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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젊은이가 수도원에 입회하겠다고 찾아왔을때, 수도원의 나이든 수사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금화 닢이 있다면 그것을 기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있습니까?

그러자 청년은 확신에 차서 대답합니다, 그럼요, 마음으로부터 모두 주겠습니다.

그럼 은화 닢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나누어 주겠습니다

 

수사가 또다시 질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그럼 동전 닢이 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러자 젊은이는 고민합니다. 수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젊은이여! 금화도 나누어 있고, 은화도 나누어 있다고 놓고, 동전은 어찌하여, 그렇게 주저하시나요?

그러자 청년이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전 닢만큼은 안되겠습니다.

아니,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러자 청년이 대답합니다, 현재 제가 가진 바로 동전 닢이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는 어떤 분은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종종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의 꿈은 선교사가 되어서 주의 일을 하는것이라고 말합니다.

분의 말은 정말 비장해 보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리고 분안에 주님이 자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분은 주일을 밥먹듯이 빠집니다.

일주일 내내 술에 찌들어 살아갑니다.

교회에 나올때도 냄새가 풍풍 풍겨납니다.

하나님앞에 드리는 물질이 인색합니다.

그렇다면 분의 고백은, 단순한 바램일뿐입니다.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다고 말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바칠 있다고 말한다해도,

동전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은화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은화를 포기하지 못하면 금화를 포기하는 일은 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여전히 내려 놓지 못하고 있는 나의 동전 닢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자존심 동전 닢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

어떤 사람에게는 반복되는 죄의 습성, 어떤 사람에게는 화난 감정 있습니다.

그것 내려 놓지 못하면, 계속 걸려 넘어질 밖에 없습니다.

신앙도 자랄 없습니다. 주님과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동전 닢을 포기하는 과감한 신앙의 진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로인해 주님이 나의 전부입니다라는 고백을 삶으로 보여주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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