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png
추천 수 0 댓글 0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의 수준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사람이 있기를 원합니다.

손가락질 받거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이 나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25:40) 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말씀인데, 묵상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주님은 어떻게 지극히 작은 자와 주님 자신을 동일시 하셨을까?

주님은 고아와 과부, 창녀와 세리들을 단순히 도와준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친구라 하시고,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수준을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낮추신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동정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연민의 마음을 갖고,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처럼 하지 못했습니다.

베풀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는 했지만,

나와 다른 이들을 동등하게 여기거나 친구처럼 여기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더 높은 위치에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그것은 완전한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상대방의 수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수준도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만 생각하며, 그 사람의 필요만 보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완전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을 낮추어 이 땅에 오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당신을 내어 주는 일은 더욱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에 복을 주셔서, 다른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과연 우리의 나눔은 주님처럼 온전한 마음이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나눔에 교만은 없었는지? 나의 만족은 없었는지? 상대를 먼저 생각했는지?

연민으로가 아니라, 진정 주님처럼 완전한 사랑함으로 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행하면 우리가 당신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14)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 삼으신 이유는,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15:17)

다른 이들을 사랑함의 정도가 주님과 내가 주님과 맺고 있는 친밀함의 정도입니다.

세상이 온통 미움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는듯해 보입니다.

이 땅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와 폭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간구해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의 마음에도 가득차기를 기도합니다.

 

 

 


담임목사와 함께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