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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장로님 병실에 찾아가서 기도할 때마다, 장로님께서 마치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일어나기를 온전히 믿었고, 끝까지 기도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의료진들과 가족간의 미팅이 있었습니다.

의료진들의 종합적인 이야기는

“장로님의 회복을 위해서 지금 행하고 있는 모든 의약 조치들이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기에,

투약을 중단하고 편안하게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평소에 친한 분들에게 알려서 마지막으로 장로님을 뵐 수 있도록 하는것이 최선”이라고 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흐느껴 울었습니다. 목사로써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가족들을 붙잡고, “의학적으로 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단지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기도가 초라해도 되나?하는 생각에

모든 것이 멍해졌습니다.

 

 

그러다가 2천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있었던 한 일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위에 달리신 주님을 보면서 가족들과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단지 흐느껴 울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에도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무엇인가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린 채로 죽으셨습니다.

세상은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대로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세상만민의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일하고 계십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이 복음으로인해 개인이 변화되고, 나라가 변화되고 세상이 구원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 의학처럼 약 한 번 먹으면 금새 아프던 통증이 사라지고

몸이 나아지는 것을 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다시 살려내고, 조금 더 살게 해 주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죄된 인생이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변화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원한 하늘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힘없어 보이고, 무능해 보일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믿는 신앙이 무력해 보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나의 능력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힘입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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