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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4 16:39

리본보다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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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우산을 가지고 뉴저지로 출발했습니다.

하늘이 푸르고, 햇살이 맑게 내리쬐서 “참으로 좋은 날이구나~는 마음으로 달려 갔습니다.

윤 장로님의 장례예식을 통해서, 장로님께서 얼마나 가족들에게 헌신하셨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신 삶이었는지 더욱 깨닫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식장안으로 들어가는데 꽃들이 반겨 맞았습니다. 유독 꽃들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주변에 한국분이 운영하는 꽃집이 없어서, 미국분이 운영하는 꽃집에 주문을 했는데,

한국꽃집과 달리 누가 그 꽃을 보냈는지 알 수 있는 리본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보낸 꽃이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조그마한 메모지에 보낸 사람의 이름과 메시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꽃에 대해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내는 “다른 장례식때는 누가 그 꽃을 보냈는지를 알리는 리본이 길게 늦어져 있어서,

꽃보다 리본이 더 돋보였는데 오늘은 꽃이 유독 아름답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누가 보냈는가를 말하려는 것보다, 장례식의 주인공인

고인을 향한 진실된 마음으로 리본없이 하는 이것이 나는 더 마음에 드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보니, 주님의 교회 꽃이 잘 왔나? 하며 리본을 찾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장례식장마다, 수 많은 꽃들이 리본과 함께 쭈욱 늘어져서,

인사치레를 하는 느낌을 주던 그 모습이 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이와같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주인공되신 주님만이 드러날 수 있도록

나는 작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은 늘 나를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좀 더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좀 더 내가 빛났으면 합니다.

내가 드러나지 않으면 심통내고, 시무룩해집니다.

 

 

그러나 내가 드러날수록, 주님은 가리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화려해 보일수록, 주님은 초라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불림 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존재로 부름 받았습니다.

주님만 드러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기뻐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만 높아지면 나는 낮아지고, 주님만 커지면 나는 작아져도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부지런히 나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나의 자존심도 내려 놓아야 하며, 나의 욕망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나의 비젼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 때 주님이 진정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3: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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