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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낳았을 때 사람들이 ‘아이가 아빠를 꼭 닮았어요’라고 하면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럴때면 ‘어디가 닮았는데요?’라고 되물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그 소리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아내와 연애할 때 ‘서로 너무 닮았어요. 오누이 같아요’라는 말은 듣기에 최고로 행복한 이야기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닮는 일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목소리, 말투, 행동과 습관까지 닮기 위해서 애쓰곤 합니다.

 

그러나 닮는 것이 항상 좋은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출애굽기를 읽다가 아주 재미난 표현에 눈이 머물러 섰습니다.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바로)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출9:34)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을때, 바로뿐 아니라, 그의 신하들이 하나같이 다 똑같아서,

재앙을 보고도 마음이 완악했고, 그로인해 애굽전체가 장자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만약 신하 중 누구 하나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달아서, 바로에게 바른 조언을 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들 모두 악한데 꼭 같았기에 애굽 전체가 멸망에 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부가 꼭 같아서 망한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신들의 밭을 팔아서 일부를 숨기고,

전부를 바쳤다고 거짓말해서 한 날에 죽었습니다.

만약 부부중 하나가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일이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며,

공동체를 속이는 일이기에 선하지 못하니까, 차라리 정직하게 밭을 판 것에서 반 만 헌금하자’고 말했다면,

그들은 초대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으로, 하나님앞에 정직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텐데,

부부가 똑같아서 한 날에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똑같은 성격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모두 똑같은 부끄러움을 당한 인물들입니다.

둘 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하였고,

그로인해 아내를 빼앗겼던 부끄러운 오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선하지 않거나, 악한 일에 똑같다면, 그것은 부끄러움이고, 실패며 재앙입니다.

서로 똑같기에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고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똑같은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똑같은가?’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 (롬16:9)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말을 하고, 선한 눈으로 보는 것에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선하지 못한 마음과, 선하지 못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에 같지 않아야 하며,

선하지 못한 말로 비난하며, 험담하는 가쉽과 같은 일에도 같지 않아야 합니다.

그로인해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마음 씀씀이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꼭 같더라’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복된 인생과 복된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담임목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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