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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5 21:05

은혜 안에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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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은혜’라는 말은 참 많이 사용됩니다.

뜨겁게 찬양한 후에 ‘은혜받았다’고 말하고, 성가대의 찬양이 ‘은혜스럽다’고 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 받았다’고 하고, 인자한 성도의 얼굴이 ‘은혜가 된다’고 합니다.

‘은혜’라는 이름을 가진 성도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마만큼 ‘은혜’를 사모한다는 증거입니다.

교인은 은혜받을 때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크리스챤들이 은혜받을만한 장소를 사모하며 찾아 다닙니다.

성경공부, 기도모임, 부흥회에도 참석합니다. 은혜받기 위함입니다. 귀하고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많은 성도들이 은혜 받는 일을 사모하는 것에 비해,

받은 은혜를 간직하는 일은 소홀히함을 보게 됩니다.

은혜는 받는 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받은 은혜를 간직하며, 그 은혜 안에 사는 일은 더 귀하고 복된 일인데 말입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말은, 은혜를 끼쳐야 하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스러워야 하고, 찬양팀의 찬양이 은혜스러워야 하고,

교회 분위기나 성도들이 은혜스러워야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위기의 교회를 찾아 교회를 이동하는 성도가 등록 교인의 75%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은혜가 충만하다면, 은혜를 찾아 헤매는 일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성도의 이야기입니다.

기도하곤픈 갈증을 가진 성도가 특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려고 마음먹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잠은 오지 않았고 급기야 자는 것을 포기한 후 책을 읽다가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교회가 멀어 택시를 탔는데, 주머니에는 딸랑 만 원짜리 한 장만 있었습니다.

요금은 속도 모르고 쑥쑥 올라가더니 급기야 9,600원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아직도 멀었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저 만 원밖에 없거든요. 그냥 여기서 내려주세요.’

그러나 기사분은 만 원만 받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속으로 감사로 눈물지으며 교회에 도착해서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저를 진짜 사랑하셔서 은혜를 부어 주시려고 이곳으로 인도해 주셨군요.’

이 성도에게 ‘오늘 예배에서 은혜 받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이상한 질문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은혜를 듬뿍 안고 교회 안으로 들어 갔기에 그 어떤 말씀도 분명 은혜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정말 황홀한 새벽기도회였어요. 은혜 주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과연 나는 은혜 받으러 다니는 성도인가요? 아니면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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